새벽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여행 중에 이렇게 아팠던 적은 처음이다. 어제 꾸역꾸역 일기를 쓸 때도 두통이 심했는데, 갑자기 숨이 쉬어지질 않는 거다. 열도 나고, 몸살 걸린 듯이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가지고 온 코로나 검사 키트로 테스트해 봤는데, 코로나는 아니었다. 이러다 크게 잘 못 될 거 같아 남편에게 전화했고, 쓰러질 상황에 대비해 내 아픈 증상과 비상 연락처를 종이에 메모해 두었다. 의식이 흐릿해지자 빨간 비상 라인을 당겨 호텔 직원을 호출했다. 직원이 올 때까지 버텼고, 응급 처치들이 이어졌다.
12월에 건강검진을 했었고, 당장 큰 병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여행 오기 전부터 앓던 병이 심해졌고, 최근에 무리해서인지 심하게 체한 것 같다. 오늘 런던으로 와야 했기에 어떻게든 견뎠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오전에 우버를 불러서 피카딜리 역까지 편히 왔는데,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힘이 없었다. 기차역 부츠에서 온갖 약을 구매했다. 역까지 잘 왔다고 남편에게 전화했다. 오빠가 너무 서럽게 울어서(내가 아픈데 네가 울면 어떡하니…) 정신이 바짝들었다.





기차는 생각보다 타기 쉬웠다. 누가 봐도 내가 좀비 같았는지, 짐칸에 캐리어를 올릴 때 여러 사람들이 도와주어 고마웠다(인류애 충전). 지정 좌석으로 기차를 예약한 건 잘했지만, 비즈니스로 끊을 걸 그랬다. 좁고 냄새나고 답답해서 공황발작까지 날 뻔 했다. 유스턴역에서 내려서 블랙캡 타고 숙소로 왔다. 몸 아플 땐 그냥 택시가 정답이다.


예전에도 이 부근에 숙소를 잡았다. 캐징턴. 난 이 동네가 너무 좋아. 날씨가 너무 맑아서 여행하고 싶게 만들었지만, 오늘은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숙소에서 푹 쉬기로 했다. 빨래를 돌리고, 햇반으로 죽을 끓였다. 해가 지기 전에 물과 과일을 사러 마트에도 다녀왔다. 내일은 컨디션이 괜찮아지기를…


남편이 보내온 보굴이의 사진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보굴이를 안고 있었다면 금새 충전이 됐을텐데잉. 모두 보고 싶어..!


릴케의 글을 되 새기며 결의를 가져본다.
“사람은 고독하다. 사람은 착하지 못하고, 굳세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하고 여기저기에서 비참한 모습을 보인다. 비참과 부조리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사람의 운명일지라도 우리는 고독을 이기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갈 결의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