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일정이 미뤄지는 바람에, 숙소를 하루 추가해야 했다. 체크인할 때 문의해 보니 당일날 직접 카운터에 말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방이 없을까 봐, 혹은 다른 방으로 이동해야 할까 봐 어찌나 (쓸데없는) 걱정을 했던지.

냉장고 털어서 요리하고, 빨래도 해 두었다. 아침부터 맨체스터를 떠날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프리티그린을 가야겠단 생각을 했다. 안 가면 서운할 것 같았다. 리암답게 매장도 예뻤고, 옷의 퀄리티가 매우 좋았다. “우리애”가 센스는 있어😁 이럴까봐 매장에 안 오려고 했는데, 외투를 두 개나 샀다. 빨간 외투 하나 갖고 싶었는데, 마침 올드트레퍼드에 가야 하니 잘됐다 싶었다.

프리티그린 앞에 오아시스 갤러리가 있어서 잠시 구경만 하려고 들어갔는데, 한참 있었다. 나도 꺄 하고 호스트도 꺄하고 난리가 났다. 덕은 덕을 알아보는 것이다. 오늘 처음 만나는 사이 주제에 손수건 주고 받으면서 눈물 닦고, 웃고, 산만했다. 맨체스터에서 좀 외로웠는데,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오아시스를 처음 접했던 중학생 시절로 돌아간 거 같아서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고(근데 걔는 왜 운 거지..)..

그리고 어느새 손에 가득 쥔 오아시스와 버브의 티셔츠들… 호스트는 고수였다. 그렇게 플렉스.

옆집 경기장은 가고 싶진 않았는데, 오빠가 이건 꼭 가라고 티켓팅 해줬다. 리버풀과의 더비전이라서인지 시티보다 티켓값이 더더더더더 비쌌다.. 내가 어! 맨유 응원하려고 프리티그린에서 산 레드자켓을 입었다 이그야. 맨시티 팬이지만 예의를 갖춘 나, 비록 빨간색을 입었으나 프리티그린을 입었으므로 시티의 본질은 잃지 않은 나, 멋지구나(?). 맨시티 경기 보러 갈 땐 평상복 입었는데 늙은트레퍼드 간다고 색깔까지 맞추고.. 가짜 팬인 거 숨기려고 하면 이렇게 더 티 나는거 같다. 하지만 경기 끝날 때까지 진실되게 GGMU모드였다구~ 우린 참 다정한 이웃이얌.

올드트래포드는 진짜 올드했다. 동네 분위기가 시골스럽고, 사람들의 외적인 모습은 찐 시골 영국인들 같았다. 구장의 동선, 시설은 좋지 않았다. 글레이저가 왜 욕을 먹는지 느껴졌다.

골머리 아팠던 스텁허브 건은 문제 없었고, 스무스하게 입장했다. 불안해서 두 시간 정도 일찍 입장했는데, 살벌하게 추웠다. 그래도 경기장에 나오는 스톤로지스와 뉴오더 노래 메들리 덕분에 지루하지는 않았다. 경기장 브금 수준 미쳤다 정말.. 어깨춤이 멈추지 않았다.

그나저나 스톤로지스와 버브, 뉴오더는 축구팀 하나는 잘 못 골랐다. 아티스트의 덕목 중 반골 기질은 필수 아닌가? 그 시대에 잘 나가는 맨유를 응원하다니.. 쯧.

도파민 터지는 경기였다. 맨유가 이번 시즌 드럽게 못해서 기대도 안 했는데, 무를 캐다니..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구나! 지금 성적도 안 좋고, 노스웨스트 더비라서 그런지, 팬들이 상당히 예민해져 있었는데, 그들의 화난 얼굴을 직접보는게 너무나도 좋았다. 상대팀에게 욕하고, 자기 팀에게도 욕하고 아주 뿱이 난무했다. 이때다 싶어 나도 옆집 욕을 시원하게 하고 왔다(Who the fuck are Man utd~).

경기 끝나고 너무 힘들어서 택시를 꼭 타고 와야 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차로 이동할 수가 없었다. 결국 한 시간 걸어서 숙소로 왔다. 소리 지르느라 목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어제 라면 먹고 체한 것은 내려가지도 않고. 너무너무 피고네.. 뭐라도 먹어야해서 파스타 대충 데워 먹고 글을 쓰고 있는데, 열도 나고 속도 너무너무 안 좋다. 챙겨온 코로나 자가검사 키트로 테스트했는데, 코로나는 다행히 아니었다. 오늘 그냥 일찍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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