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요즘 푹 빠져 있는 오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체크아웃했다. 어제부터 남편은 나를 두고 가는 게 걱정된다며 울상이었다. 한국에선 괜찮았는데, 해외에서 혼자 남겨두고 가려니 마음이 쓰인다고. 그래서 말했다. “오늘 오빠가 걱정해야 할 건 딱 하나, 오늘의 경기뿐”이라고. 그 말에 눈물 쏙 들어간 남편은 나를 새 숙소 앞까지 데려다주고 떠났다. 공항에 도착한 뒤 주고받는 메시지 속 남편은 이미 즐거워 보였다. 이제부터 남편은 3주간 나로부터 해방이다. 아저씨, 실컷 즐기세요. 나도 실컷 즐길 예정입니다.

체크인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아서 컨시어지에 짐을 맡기고 도시로 나왔다. 경기 시간이 체크인 시간과 겹쳐 오늘은 경기 끝날 때까지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금요일 밤의 광란이 지나간 탓인지, 맨체스터 도시는 텅 비어 있었다.
카페 → 걷기 → 맥주 → 걷기 → 밥 → 또 맥주 → 걷기 → 도시 구경. 이런 루틴으로 여유를 즐겼다.

며칠 전에 지나온 애쉬턴 커날을 산책하는 게 좋더라. 날씨는 화창했지만, 그것에 속아서는 안 된다. 칼바람이 불어서 매우 추웠다. 맨체스터 사람들은 이 날씨가 따뜻하다고 느끼는 것인지,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음악의 도시답게 곳곳에 뮤직 포스터가 붙어져 있었는데, 트리뷰트 페스티벌 라인업이 난리 났다ㅋㅋㅋ 이 정도 호화 라인업의 공연이라면 무조건 가야지.ㅋㅋㅋ 너무 부러웠다. 스타디움 가는 길은 쉬웠다. 얼추 동쪽을 향해 가다 보면, 하늘색 유니폼 입은 사람들이 점점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저께 투어도 했지만, 이티하드에 다시 도착하니 또 설렜다. 사람들과 함께 모여 선수들을 맞이하는 그 분위기—그것만으로도 벌써 흥분됐다. 스텁허브에서 어렵게 구한 티켓도 드디어 확인했고, 다행히 페이크는 아니었다. 경기장 안에 들어가니 모두가 배를 채우며 리버풀 경기를 보고 있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같이 봤다. 리버풀이 져야 하는데, 또 이기고 있었다. 분명 어제 안필드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왔는데 왜 이러냐.

내 좌석은 생각보다 많이 앞쪽이었다. 경기 전에 선수들이 몸 푸는 것, 네빌이 방송 준비하는 것, 공룡언니를 보면서 경기 전 시간을 보냈다. 경기장 안이 밖보다 훨씬 추웠는데, 꽁꽁 싸매고 왔는데도 너무 추웠다. 그러나 맨체스터인들은 바람막이 하나로 버텨내는 것 같았다. 심지어 초딩들은 반팔 반바지라니, 맨체스터는 부모들이 아이를 강하게 키우는 구나…. 훌리건이 괜히 나오는게 아니었다.

경기 시작 전, 오아시스와 뉴오더 음악이 울려 퍼졌다. 아… 맨체스터 진짜 사랑해요. 블루문 오프닝까지 따라 부르며 감동을 미리 충전했다. 경기도 시작하기 전에 감동을 주는 곳이 모다? 맨체스터 시티~~~

하지만 정작 경기는… 핵노잼. 이건 다 아르테타 때문이다. 이길 생각은 없고 비기려는 쫄보 전술로 버스 두 줄 세우고, 누워서 시간 끄는 헐리웃 연기까지. 경기 흐름을 다 끊어먹었다. 이러니까 우승을 못 하는 거다. 그리고 세트피스 때마다 나대는 조버… 너무 싫었다. 시티가 이기면 악수도 거절하는 그 쫌생이. 사람들과 함께 중지 척하며 스트레스 해소했다.

내 양옆은 거의 걷지도 못하는 노인 두 분, 앞줄은 얌전한 동양인 여행객들. 결국 목이 쉬도록 응원하고 욕하고 소리 지른 건 나뿐이었다. 다음엔 원정석 옆으로 가야겠다. “Where’s your European Cup?” 챈트는 역시 꿀잼이었다. 작년에 트레블 안 했으면 어쩔 뻔했니, 우리. 요즘 자꾸 눈에 밟히는 건 역시 로드리. 수미는 튀면 안 된다지만, 잘하는 걸 어떡해. 잘생기기까지 했는데(내 눈 낮다고 남편에게 지적받은 그 로드리).

경기 끝나고 뒷풀이를 하고 싶었지만, 이티하드 주변엔 펍이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택시를 타고 가려 했지만 인파가 도로를 점령해 택시·트램·버스 모두 불가능. 결국 사람들 따라 걸었다. 50분. 그리고 숙소 도착.

짐을 찾아 체크인했는데, 뭐야 숙소 너무 좋네?? 가격 엄청 싼데… 디자인, 크기, 편리함, 청결함 등 모든 게 온라인에서 본 것보다 훨~씬 좋았다. 오늘 너무 무리해서, 내일은 좀 여유 있게 보내야겠다. 그나저나 보굴 아범은 어디까지 갔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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