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섬🌆

홍콩에 도착했다. 헤식이가 살고 있는 곳이라 낯설지 않고, 세 번째 방문이라 마음까지 한결 여유롭다. 여행 준비도 특별히 할 게 없어 가볍게 나섰지만, 캐리어만은 묵직했다. 헤원에게 전해주려고 백화점에서 김치를 종류별로 잔뜩 챙겨왔기 때문이다. 배추김치는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총각김치, 열무김치, 갓김치, 파김치, 오이소박이 같은 것들로 꽉꽉 채워왔다.

운 좋게도 가장 짧은 동선으로 숙소에 도착했다. 넓고 깔끔한 최신식 객실이 마음에 들었지만, 도심 한가운데라 소음이 다소 아쉬웠다. 저녁은 모노클에서 보고 예약해둔 레스토랑에서 먹을 예정이었지만, 기다리기엔 배가 너무 고파 근처 노포에서 먼저 식사를 했다. 정겨운 분위기가 좋긴 했지만, 혼자 앉아 있으니 어쩐지 허전했다. 예약해둔 ‘소셜플레이스’는 그와는 정반대의 모던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맛본 트러플 딤섬은 단연 최고였다. 매일 먹고 싶을 만큼.

식사 후 마침 퇴근한 헤원이 연락을 해왔다. 근처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함께 숙소로 들어왔다. 배고프다던 헤원에게 김치와 햇반을 내줬더니, 기다렸다는 듯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웃으며 수다를 더 떨다가,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헤원을 페리까지 바래다주며 홍콩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했다.

다음 날 아침, 호텔 조식을 먹고 컨시어지에 짐을 맡긴 뒤 완차이로 향했다. 이 동네는 올 때마다 참 분위기가 좋다. 한남동의 절제된(겉멋 빠진) 버전 같은 느낌. 골목마다 작은 편집숍들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점심은 4년 전쯤 갔던 레스토랑에서 했다. 그때처럼 들뜬 기분은 아니었지만, 테라스형 식당의 분위기는 여전히 좋았다.

이후 센트럴로 넘어가 옛 경찰학교를 리모델링한 PMQ에 갔다. 넓고 시원한 이 멋진 공간을 이런 콘텐츠로 재구성하다니 실망스러웠다. 우리나라 DDP를 떠올리게도 했다. 시간은 넉넉했지만, 여행만 오면 괜히 발걸음이 빨라진다. 무릎이 시큰거려 라마섬행 배가 올 때까지는 카페에 앉아 쉬었다.

헤원 퇴근 후 페리에서 만나 라마섬에 함께 들어왔다. 이번 숙소는 헤원네 집에서 불과 10분 거리. 게다가 옥탑방이었다. 20대에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던 로망을, 비록 며칠이지만 이렇게 이룰 수 있게 되다니. 갑자기 20대가 된 듯한 설렘이?